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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5. 15世 〉5. <부정공>성균생원화은공휘당묘갈명(成均生員華隱公諱儻墓碣銘)
1. 문헌 목록 〉15. 15世 〉7. <부정공>처사휘지빈묘표(處士諱之賓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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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정공>증통훈대부사복시정공휘경운묘갈명(贈通政大夫司僕寺正公諱景耘墓碣銘)
贈通政大夫司僕寺正公諱景耘墓碣銘 大抵人之純孝者從古何限而有天子諸侯之孝有鄉大夫士庶人之孝亦各隨其分盡其誠而至若趙公之根天孝行世之言孝者一辭並稱何其純也公諱景耘字和仲籍玉川胄于高麗檢校大將軍諱璋而以玉川府院君諱元吉前朝忠臣諱瑜爲顯祖再傳而諱智崙官察訪四昆季同處相好亭遂以友愛名於世生諱穩生進俱中官直長生諱淑珪官察訪是於公六世以上也曾祖諱慶悦祖諱時呂皆有學行隱德不仕考諱完寶以孝聞多有薦狀妣星山李氏承雨女光山金氏宇一女公李氏出也生有純實之性長有仁孝之行事親極志物之養兄弟篤因心之愛交隣以恤貧窮而與同飢飽親癠問醫湯藥滫瀡煎粥靡不殫誠漸至危㞃得非時之江鯉山嶡以供親厨割股注血延幾絶之命遭艱居廬盡制血淚淋漓墓木被涙而枯與漢之黃香晋之王祥吾未知孰爲優劣而獨恨夫不得長德之一筆揄揚也然幸遇聖明之世既蒙聖朝褒 贈則此足以廣公孝於一世矣公以 肅宗庚辰生辛卯正月二十七日卒葬于住岩面防築洞寅坐之原配淑人順興安氏濡之女孝敬備至有女士風以甲申生乙亥十月九日卒墓與公祔兆焉男光一光聖孫翼源禮源也曾玄不盡錄嗚呼父之九歲居喪似無愧於黃香子之江鯉果合王祥雙鯉一門雙孝醴芝尤驗而世所罕儔隣里爲之感頌鄉道爲之剡薦七世孫湘龜懼夫歲久湮沒而索銘於余余亦同感其誠不敢以無文終辭系之以銘曰性有純實行有孝仁割股注血幾絶復蘇模於今世華乎古人肖孫建碑芳名益新 傍裔 東貴 謹撰 증통훈대부사복시정공휘경운묘갈명(贈通政大夫司僕寺正公諱景耘墓碣銘) 대저 전일(專一)한 효도를 한자가 예로부터 어찌 한정이 있으리요만은 효도는 천자 제후(諸侯)의 효도가 있고 경대부(卿大夫) 사서인(士庶人)의 효도가 있어 각기 그 분수에 따라 그 정성을 다 하는데 조공 같은 하늘이 낸 효도는 당세에 효도를 말한자가 다 같이 칭송하니 어찌 그리 전일하였든고. 공의 휘는 경운(景耘)이요, 자는 화중(和仲)이며 옥천조씨(玉川趙氏)인데 고려 문하시중(門下侍中) 휘 장(璋)을 시조로 옥천부원군 휘 원길(元吉) 전조(前朝) 충신 휘 유(瑜)가 현조(顯祖)요, 재전하여 휘 지륜(智崙)은 벼슬이 찰방(察訪)이요, 四형제가 상호정(相好亭)에 함께 거처하여 마침내 우애(友愛)로써 영문(令聞)이 있었으며 생휘(生諱) 온(穩)은 진사로 벼슬이 직장(直長)이요, 생휘 숙규(淑珪)는 벼슬이 찬발인데 공의 六세이상이시다. 증조 휘 경열(慶悅) 조 휘 시여(時呂)는 다 학행이 있었으나 덕을 숨기고 벼슬아니 했으며 고 휘 완보(完寶)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천장(薦狀)이 많이 있었고 비는 성산(星山) 이씨 승우(承雨)녀 광산(光山) 김씨 우일(宇一)녀며 공은 이씨 소생이다. 어려서부터 순실(純實)한 성품으로 인효(仁孝)한 행실이 있어 어버이를 섬기며 지물(志物)의 봉양을 다하고 형제 우애하며 항리에 빈궁한 자를 구휼하여 배 부르고 주림을 같이 하였다. 어버이 병환에 의원을 불러 약을 다리고 미음과 죽을 몸소 끓여 정성을 다하였으며 위독하시매 때 아닌 잉어와 고사리를 구하여 구미(口味)를 맞추고 다리살을 베어 피를 드려 거의 끊어진 목숨을 연명하였다. 운명하시매 예제(禮制)를 다하고 三년 시묘하며 피눈물이 항시 줄줄 흘러 벌송이 젖어 말라 죽었으니 한(漢)나라 황향(黃香)과 진(晋)나라 왕상(王祥)으로 더불어 그 효행의 우열(優劣)을 가릴 수 없는데 내 홀로 도학군자의 찬양한 문자가 없음을 한탄할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 성명(聖明)한 세대를 만나 이미 성조(聖朝)의 포증(褒贈)을 받았으니 이로써 족히 공의 효도를 온 세상에 천명했다 하겠도다. 공이 숙종(肅宗) 경진생으로 신묘년 정월 二十七일에 졸(卒)하니 주암면 방축동(防築洞) 인좌(寅坐)의 언덕에 장사하고 배는 숙인 순흥안씨(淑人順興安氏) 유지녀(濡之女)로 효경(孝敬)이 지극하고 여사풍(女士風)이 있었는데 갑진생으로 을해년 十월 九일에 졸하여 공의 묘소에 부장하였다. 아들은 광일(光一), 광성(光聖)이요, 손자는 익원(翼源), 학원(學源), 예원(禮源)이며 증현은 다 기록 아니한다. 오호라. 아버지의 九세 거상(居喪)이 황향(黃香)에 부끄럽지 않고 아들의 강리(江鯉)가 왕상(王祥)의 쌍리(雙鯉)와 같이 一문 쌍효는 영지(靈芝)와 예천(禮泉)의 결정(結晶)이며 세상세 짝할자 드므니 인리(隣里)가 감송하고 향방(鄉邦)이 공천하였다. 七세손 상구(湘龜)가 오래되면 더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여 묘문(墓文)을 내게 청하므로 그 성의에 감동하여 감히 문자가 졸하다 사절치 못하고 새겨 가로되, 순실한 품성으로 행실이 또 효인하여 性有純實行有孝仁 다리를 베어 피를 드려 끊어진 목숨을 다시 소생케하였다. 割股注血幾絶復蘇 금세에 모범이요, 옛 사람 가운데 특별히 뛰어났다. 模於今世華乎古人 어진 후손이 비를 세우니 꽃다운 이름이 더욱 새롭다. 肖孫建碑芳名益新 傍裔 東貴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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